시집 앵무새 학당

하늘 그물

분천 2013. 9. 27. 18:23

하늘 그물

 

 

 

대웅전 처마가 그물에 걸렸다

그물코 사이로 군데군데 새들의 빈 집이 보인다

제석천의 그물에는

매듭마다 아름답고 맑은 구슬이 달려 있다는데

구슬은 서로를 비추고 있어

한 개의 구슬에 모든 구슬이 다 머물고 있다는데

단청에 거소를 둔 새들은 당분간 노숙을 해야 할 것이다

그물이 가뿐하게 지붕을 들어 올릴 수 있기를

새들도 회화나무 그늘에 앉아 연신 머리를 조아린다

염불소리의 의미도 모른 채

수리중이라는 팻말만 무심코 지나쳤던 나는

대웅전 처마가 그물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서야

이곳이 바다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대웅전 한 구석에 반야용선도 보인다

그물이 출렁거리자 물거품이 일듯

지붕 위로 흰 구름이 뭉글뭉글 피어오르고 있다

곧 반야용선이 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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