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문인 에세이] 잊지 못할 썬힐

분천 2016. 12. 23. 09:15

[문인 에세이] 잊지 못할 썬힐

  • 이명 시인
  • 승인 2016.12.19 10:35



학교와 사회와 가정이 


삼위일체가 되어 한 아이의


장래를 염려하고 육성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들은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는 직업을 존중했다


고통 없이 자라는 나무가 


어디 있겠는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며 


더욱 성숙된 한국을 


기대해 본다



나무들이 혹한을 맞고 있다.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동안거에 든다. 인내를 배우기 위해 스스로 고통의 들판에 우뚝 서 있다. 앙상한 나무들을 보면 이미 오래전의 일이긴 하지만 그 아름답던 랜싱, 썬힐의 숲이 생각난다. 


어디를 가나 숲이 있었다. 오대호의 모진 바람에 맞서 잎을 모두 버리고 알몸으로 추위와 맞서고 있는 모습이 쓸쓸하다기보다 당당해 보였다. 

랜싱은 미시간 주의 주도다. 날이 갈수록 생각나는 것은 그곳이 너무도 순수한 곳이기 때문이다. 자연이 그렇고 꾸밈없는 거리들이 그렇고 사람들 또한 순박하기 그지없었다. 미국의 주도라는 곳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랜싱도 미시간대학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나는 세계 전 인종의 용광로 같은 미국을 지탱해주는 거대한 힘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교육제도는 놀라웠다. 아이가 어려 초등학교 5학년에 입학을 시켰다. 아이는 영어를 할 줄 몰라 무척 힘들었겠지만 겉보기에는 잘 적응하는 것 같았다. 아이를 학교에 보낸 것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 부모 면담이 있다며 기간을 잡아 편리한 날에 학교를 방문해 달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처럼 한 번도 아이가 다니는 학교를 방문해 본 적이 없는 부모로서 가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데 내가 바쁜 줄 알고 학교 일정과는 상관없이 내 일정에 맞춰 날짜를 잡아달라는 전갈이 왔다.


안 되겠다 싶어 날을 잡아 주고 그 시간에 학교에 갔다. 학과별 담당 선생님들이 부산하게 왔다 갔다 하며 무척이나 반갑게 아이의 학교 일들을 과목별로 자료와 함께 소상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학교가 무엇을 지도하고 있으며 아이의 반응은 어떠하며 아이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학업 성취도는 어느 정도이며 이에 따라 학교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으며 아이가 친하게 지내는 아이는 누구며 아이에 대해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설명을 끝내며 선생님마다 학교에 요구할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내가 요구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대응책을 강구해 주었다. 그리고 내게 학교가 요구하는 것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학교와 사회와 가정이 삼위일체가 되어 한 아이의 장래를 염려하고 육성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들은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는 직업을 극히 존중했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라 생각할지는 몰라도 작금의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생각을 삶의 근저로 삼고 있었다. 군인과 경찰과 소방관과 우체부, 이들에 대한 존경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상의 모든 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과 미국인, 누가 이 거대한 땅과 사람들을 지켜주고 존재하게 해 주겠는가.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내게는 무척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먼 곳에 살고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까지 초대해 소개해 주었다. 그는 자유를 위해 싸웠고 지켜냈다는 것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남이 정정당당하게 승리했을 때 유쾌히 여겼고 부정을 행한 자에게는 추호의 용서가 없었다. 그의 지도자들이 내리는 여러 가지 결정을 따질만한 기백이 있었으며 또한 그러한 결정이 내려지는데 대하여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고통 없이 자라는 나무가 어디 있겠는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며 모든 면에서 더욱 더 성숙된 한국을 기대해 본다.



[불교신문3259호/2016년12월21일자] 


 
 

이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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