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허술한 왕국, 시의 나라 / 주경림

분천 2021. 3. 18. 05:28

 

허술한 왕국, 시의 나라

 

-주경림

 

이 명 시집 『기사문을 아시는지』

현대시학사

 

 

2010년 『문학과창작』 신인상, 2011년 불교문예 신춘문예 당선으로 활발한 문학 활동을 벌여온 이 명 시인이 강원도 강원문화재단 후원으로 발간한 신작 시집, 『기사문을 아시는지』를 보내왔다. 시인이 도시를 떠나 양양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주로 소재로 삼았던 그의 다섯 번째 시집 『텃골에 와서』에 실렸던 「기사문 엽서」가 떠올랐다.

 

험한 길을 헤치며 오다보면

당신도 곧,

나보다 더 깊은 바다가 될 까 염려됩니다만

오기 전에 문자 한 통 넣어 주십시오

이곳도

사람 사는 데라는 것을 소상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기사문 엽서」 하반부

 

이 명 시인이 독자에게 띄운 「기사문 엽서」에 의하면 기사문은 강원도 양양군 해안에 위치한 어항이다. 그런데 시집 첫 장을 넘겨 “기사문은 하늘로 통하는 문이다.” 라는 「시인의 말」 첫 줄을 대하니 ‘기사문’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이명 시인의 시적 상상력으로 확대된 시공간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춘식 평론가는 “이 명 시인의 ‘기사문’이라는 장소는 이 시집 전체의 ‘시적 알레고리’로도 읽힌다.”라고 했다.(시집해설 「잉크보다는 생명의 피」) 기사문과 관련된 「하늘문」, 「마찬가지」, 「기사문 노마드」, 「기사문을 아시는지」, 「기사문으로 오세요」 등의 시를 차례로 만나면서 불교적인 세계관을 아우르며 신화적인 상상력이 충만한 이 명 시인의 독자적인 시적 공간에 푹 매료되었다.

 

기사문 가는 길은 멀다

밤마다 바다에 별이 뜨는 곳

제석천 그물에 올라

최 선장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집을 나서는데

그것이 하늘길이라는 것을 아시는지

- 「하늘문」 상반부

 

기사문으로 가기 위해서는 “제석천 그물에 올라 최 선장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야 한다. 제석천(帝釋天)은 고대 인도에서 오랜 기간 숭배되어온 최고신으로 불교에 수용된 천신(天神)이다. 제석천의 궁전에는 장엄한 무수한 구슬로 만들어진 그물, 인드라망이 드리워져 그물코마다의 투명구슬에는 우주 삼라만상이 휘황찬란하게 투영된다고 한다. 시적 화자가 불교적 세계관인 “제석천 그물에 올라” 현실적인 바다길 안내자인 “최 선장”의 도움으로 “하늘길”, 밤바다 어선에 탑승한다. 「하늘문」으로의 입문이다. 다음, 「마찬가지」에는 밤바다에서 늘 행해지는 고기잡이 일상이 시인의 상상력으로 새로운 신화적인 공간으로 거듭 나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캄캄한 밤 기사문 선장들은 신이다

별의 이름을 갖는다

가깝고 먼 바다에 별 하나씩 띄워두고

통발을 걷고 그물을 걷는다

수면은 경계가 되고

경계 위로 별빛 따라 줄줄이 올라오는 몸들

제석천의 그물에 걸려 우리는 경계를 넘어서고

보이는 그물이나 보이지 않는 그물이나

희미한 별빛 아래 펼쳐져 있다는 것은 마찬가지

신들이 있고 반야용선이 있다는 것은 마찬가지

아침마다 기사문 부두는 수미산이 되고

깍두기 머리를 한 신이나

파마머리를 한 여신이나

한 섹터를 관장하기는 마찬가지

분주하게 드나드는 자망 통발 정치망 배들

운명을 다한 영혼들을 안내하는데

모든 길은 하늘로 열려 있어

밤하늘의 별이나 바다의 별이나

멀고 그립고 아득하기는 마찬가지

별밤을 기다린다

-「마찬가지」 전문

 

이제, 선장들은 신이 되고, 불 밝힌 어선들은 별이 된다. 고기잡이 그물은 제석천의 그물, 귀항하는 어선은 반야용선, 물고기들이 수북이 쌓인 기사문 부두는 수미산, 남녀 일꾼들도 모두 신이 된다. “제석천의 그물에 걸려 우리는 경계를 넘어서”듯 바다의 생명들도 죽음이 끝이 아니라 “운명을 다한 영혼들을 안내하는데” 따라 멀고 그리운 밤하늘의 별들로 돌아감이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죽으면 별이 된다는 이야기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지 않은가. 김춘식 평론가의 해설을 인용해 본다.

“이제 기사문 전체는 ‘신화적 장소’, ‘신들의 장소’로 변한다. 그저 일상적인 풍경일 수도 있는 ‘장면’에 ‘신화적 상상’이 개입되면서 ‘삶’은 어딘가 신성한 ‘아우라’를 품기 시작한다.”

 

광어좌 방어좌 곰치좌 도치좌 문어좌 가리비좌

뭇별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창가에 기대

아스라이 별의 위치를 점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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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마다의 사연이 신화가 되어 흐르는 저 하늘 속으로

이미 유성이 되어 떠난 사람들을 생각하며

한 됫박의 어둠을 마신다

-「기사문을 아시는지」 부분

 

죽은 물고기들은 우주적 질서인 생명의 순환 따라 별의 입성을 새로 걸쳐 하늘에 떴고 시인은 “이미 유성이 되어 떠난 사람들을 생각하며” 한 됫박의 어둠을 마시는 현실로 돌아온다. 이 명 시인은 이처럼 신화적 시공간으로 초대해 우리의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가꾸어 준다. 현실로 돌아온 시인은 송이버섯 등대, 다닥다닥 붙어있는 마을 집들, 간판, 리조트, 모텔---등, 기사문항의 실제 풍경을 보여주며 “정열적인 당신, 이곳에서 꽃을 피워 보세요” 하며 우리를 부른다.(「기사문으로 오세요」)

 

기사문에 관련된 시를 읽다가 문득,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시조시인,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1467~1555)의 「漁父歌」 가 떠올랐다. 이 명 시인은 농암의 17대 손이라고 한다. 「漁父歌」 는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속세를 떠나 유유자적하며 자연의 흥취를 즐기는 어부 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한 시조다. 필자는 이 명 시인보다 먼저 농암을 「때때옷의 선비, 농암 이현보」전시에서 만났다.(국립중앙박물관 2007년11월) 작년 가을 9월에는 이 명 시인의 삼형제 예술가의 합동 시서화전 「농암聾巖에 올라보니」가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에서 열리기도 했다. 대물림하는 예술적 재능과 선비 정신을 지키며 꽃피우는 시인과 화가, 서예가인 형제분들께도 큰 박수를 보낸다.

인생을 4단계로 나누는 브라만교에 의하면 시인은 어느 정도 사회적 의무를 다하고 자식들도 다 키웠으니 이제 집을 떠나 자신의 영혼을 정화하고 구원하는 시기인 3단계 임서기(林棲期)에 속한다. “언제 어디를 돌아봐도 자연은 나를 버리라 하고 저들과 더불어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허물을 벗어 던지며 자유를 만끽”(「시인의 산문」)하며 시인은 강원도 산골에 살고 있다. 그에게 자연은 시의 곳간이다. 그곳에서 피어난 시들은 서정의 본질에 충실하며 삶에 대한 성찰로 이어져 시와 시인이 서로 닮아있다.

 

침묵하더라도

누가 두드리거든 드높은 가을 하늘이 되거라

소리 내지 않아도

노을에 우러나는 서러움이 되거라

네 스스로 뜨거움이 되거라

- 「종에게」 전문

 

「종에게」는 독락(獨樂)의 경지에 이른 시인의 모습이 그대로 비쳐져있다. 침묵과 소리, 서러움과 뜨거움의 경계가 허물어질 때 북명(北溟)을 생각하며 벽암(碧巖)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는 커다란 공명을 이룰 것이다.

 

시집으로 『분천동 본가입납』, 『앵무새 학당』, 『벌레문법』, 『벽암과 놀다』, 『텃골에 와서』 e-book 『초병에게』, 시선집 『박호순미장원』이 있고 「카오스 병동」 으로 목포문학상을 수상했다.(2013년)

 

 

『문학과 창작』 2021년 봄호 : 좋은 시집 좋은 시 / 주경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