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서 향기가 났다

어떤 바람이나 욕심도 없이

시골 생활에 서툴기 짝이 없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끝없는 배려

나는 내가 부끄러웠다



산중턱 외딴집 앞마당에 외등 하나 세워졌다. 높이가 6m는 족히 넘는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 막바지 어느 날 새벽 느닷없이 트럭 한 대가 올라왔다. 아랫마을 희영호 선장이었다.


조그만 집이지만 완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두서없이 지내던 때였다. 가로등 하나 없어 밤이면 캄캄하던 집이 안타까웠는지 창고에 고이 간직해두고 있었던 20여 년 전 하조대 해수욕장에서 장사할 때 사용했다는 등을 차에 싣고 올라온 것이다. 온 종일 땀 흘리며 쇠파이프를 잇고 등을 연결하고 선을 이어 바위 위에 세워두고 내려갔다. 오징어잡이 배에서 사용한다는 나트륨 등, 켜 보니 어둠 속에서 서서히 켜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등은 환하게 밝아온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그토록 오랫동안 간직해온 등을 왜 이 외딴집 앞마당에 세워두고 갔을까? 등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어떤 설명도 없이 작업을 끝내고 그저 밝은 얼굴로 유유히 사라졌다. 그 뿐만 아니다. 부탁하지도 않았건만 집을 짓고 남은 자투리 나무로 마당에 6인용 식탁과 의자를 만들어 주었고 예전에 사용하던 우물이 있다며 오래된 우물을 청소해 주고 자동 펌프로 퍼 올려 사용하도록 해 주었다. 비가 오면 땅이 질퍽하다며 자갈을 트럭에 싣고 와 깔아 주었다. 무릎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보일러실을 만들어 주었고 거실 탁자와 의자를 만들어 주었다. 온갖 공구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이용해 못 만드는 것이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사람들은 그를 맥가이버라 불렀다. 바다 일만 해도 벅차고 바쁠 텐데 거의 매일 배 일이 끝나면 올라와 자기 집 다루듯이 돌봐줬다. 그의 일을 거들 때마다 나는 공구 이름 하나 알지 못해서 심부름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삽질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그런 내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몰라도 너무 몰랐고 일을 해도 너무 서툴렀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볼 때마다 저런 사람이 지금까지 어떻게 이 힘든 세상을 온전하게 살아왔는지 한평생 무엇을 어떻게 해서 먹고 살아온 것인지 신통하다는 듯 안타깝다는 듯 묘한 궁금증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전기톱이며 전동 드라이버며 산골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매일 오르락내리락 하는 그를 보며 그의 아내가 내게 한 이야기가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우리 남편은 윗집 사람과 전생에 무슨 애인 관계였나 봐. 자나 깨나 윗집 걱정, 윗집 생각뿐이니.” 그의 아내 말을 들으며 나는 난생 처음 내 전생을 짚어주던 절물휴양림 늙은 선사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는 보면 볼수록 신통했다. 그를 생각하면 내 마음이 환하게 밝아 왔다. 말없이 와서 이것저것 살펴보며 내려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배를 타는 그에게서 요즘 보기 드문 진정한 선비정신을 보았다. 한평생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덕성(德性)의 향기를 피우는 일이라 했던가. 그에게서 향기가 났다. 어떤 바람이나 욕심도 없이 시골 생활에 서툴기 짝이 없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끝없는 배려. 나는 내가 부끄러웠다.


이 외딴 곳에서 느닷없이 만난 도반.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그의 앞날에 경사스런 일만 있기를 바랄 뿐이다.



[불교신문3177호/2016년2월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