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행사장을 가고서야

양복위에 양복을 입었다는

코미디 같은 모습을 본다

 

서글픈 일이지만 나이가 든다

그러면 어떠랴

물 흐르는 대로 살면 되지… 


지난 겨울 어느 날 내의를 갈아입고 외출했다. 화장실을 가서보니 아무래도 이상했다. 불편하기 짝이 없어 살펴보니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는 것이 두 벌을 겹쳐 입고 나왔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촉박해서일까. 곰곰이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의를 두 벌 걸치고 나온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고 또 생전 처음 겪는 일이라 무척이나 당황했다.


그 얼마 후 여의도 행사에 초대 받아 갔다. 축시를 부탁 받아 써주었기 때문에 축시를 쓴 사람의 자격으로 초대 받아 간 행사였다. 시낭송은 전문 낭송가가 한다고 했다. 봄날이 하도 좋은 것 같아 보여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만에 양복을 꺼내 입고 나섰다가 바람이 의외로 차가워 다시 들어와 바바리코트를 걸쳐 입고 나갔다.


시 낭송가가 예행연습도 있고 하니까 두 시간 전쯤 와 달라는 부탁이 있어 서둘러 좀 일찍 나선 것이다. 전철을 타고 가는데 이상하게 몸이 무거운 것을 느꼈다. 행사장에 도착해 코트를 벗는데 아니나 다를까 위 양복이 두 벌이나 나왔다. 지난 번 내의 일도 있고 해서 속으로 무척 당황했다. 코트 속에 콤비가 있는 것도 모르고 그냥 걸치고 나왔으니 이미 입은 양복 위에 한 벌 더 걸쳐 입은 셈이다. 어이가 없어서 옆 사람 몰래 의자 등받이에 모른 척 걸쳐 놓았다. 코미디를 하는 것 같아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그러나 그런 나를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어간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서글픈 일이었다. 우습기도 한 일이지만 어디 누구에게 쉽게 꺼내놓고 이야기하기란 더욱 쑥스러운 일이어서 그냥 혼자 속에 담아두기로 했다.


그나저나 그런 일이 있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레미콘차를 보고 무심코 리모컨차라 했다. 아이들이 웃기에 그 웃음의 이유를 몰랐다. 나는 계속 리모컨차라 하고 아이들은 웃어댔다. 나는 실없는 아이들이라고만 생각했다. 나중에 아내가 지적해 주어 알고 난 후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가 실수한 것을 아내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연달아 그런 일이 있은 후 혼자 담아두기엔 그렇고 해서 아예 털어버리면 오히려 나을 것 같아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다. 나는 내심 심각하게 이야기 했지만 아내는 우습다며 조롱하듯 웃어댔다. 한편으로 걱정되기도 했는지 병원에 가 보잔다. 아내는 그대로 방치하면 병이 될 수도 있단다. 나는 아무 일 아니라고 괜찮다고 우겼지만 치매 초기 증상이라며 떠들어대는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병원에 갔다.


간호사가 다짜고짜 속옷을 걷어 올리고 의사가 청진기를 갑자기 들이대는 바람에 가슴이 시렸다. 의사가 어디가 불편해서 왔느냐고 묻기에 순간 왜 왔는지 생각이 안 났다. 깜박 잊어버린 것이다.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모두 잊어버리고 왠지 모르게 웃음만 나왔다. 실없이 웃는 나를 보며 간호사가 하는 말 “참 좋아 보이시네요.”


불가(佛家)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벽암록>을 접한 적이 있었다. 뭔가 하고 들여다보니 아무리 읽어봐도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다. 그저 다만 신기할 뿐, 말도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로구나 대답도 그럴 수가 있겠구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굳이 씨름하며 머리 아파할 것 없다 생각했다. 너무 황당한 것이어서 돌아서면 잊어버렸다. 쉽게 잊어버린다는 것은 슬픈 일, 잊힌다는 것도 슬프고 잊지 못한다는 것은 때로 더욱 슬픈 일이다. 어떤 모습이든 그저 물 흐르듯 살기로 했다.



 [불교신문3193호/2016년4월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