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임관 4개월만에
수류탄 사고 현장에서
부대원들 대신 산화
그의 짧지만 붉었던 삶은
해마다 오월이면
붉은 꽃으로 피어난다
마음에 꽃이 된 사람…
대왕 철쭉은 붉다. 온 산 구릉을 덮은 대왕 철쭉은 붉다 못해 내 옷까지 붉게 물들인다. 옷이 물들면 내 마음도 붉게 물든다. 5월이 되면 울긋불긋 물드는 산하, 그 향기에 취한다. 이 화창한 계절에 떠난 사람이 있다. 5월 이맘때쯤, 대왕 붉은 꽃을 보면 그 보다 더 진한 삶을 살다간 한 사람이 생각난다.
세월 따라 가물가물 잊혀져가는 꽃이 된 사람 고(故) 차성도 중위, 젊음은 한 순간에 갔다. 미련 없이 갔다. 울산에서부터 영천으로, 영천에서부터 화천으로, 화천에서부터 동작동까지 그의 짧은 삶은 군더더기 하나 없었다. 그가 간 혁혁한 순백의 길, 그는 내 마음 속에 대왕보다 더 붉은 꽃으로 피어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생각나는 사람 성도화, 나는 그 꽃에 물든다.
그는 소위로 임관한지 만 4개월 만인 1970년 5월13일 21시25분경 화천군 사내면 용담리 각개전투장에서 소대 야간 방어 사격훈련의 일환으로 실시된 수류탄 투척훈련 중 한 명의 병사가 파지 부주의로 안전 손잡이를 놓치는 것을 발견하고 소대원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으로 수류탄을 덮쳐 전 소대원을 구하고 자신은 복부 파열상을 입고 현장에서 장렬하게 산화하였다. 절명의 순간에 “나 외엔 다친 사람은 없느냐?”고 물으며 순직하였다고 한다. 이 한 마디로 간단히 요약되는 그의 삶, 그는 그의 생을 짧고 굵게 순간에 마감했다.
고 차성도 중위는 1947년 6월1일 차원줄 씨와 박차선 여사의 4남2녀 중 3남으로 울산광역시 중구 남외동 321번지에서 태어나 병영초등학교, 울산 제일중학교, 울산공고를 졸업하고 1969년 3월18일 육군 제3사관학교 1기로 입교했다. 1970년 1월17일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27사단 78연대 1대대 2중대 2소대장으로 장교의 첫발을 시작하였으나 그 해 5월 순직하였다. 불과 임관 4개월만의 일이었다. 1970년 5월16일 10시 사단장 주관 하에 사단장으로 영결식이 거행됐으며 5월13일부로 중위로 추서되었다. 그는 동작동 서쪽 6번 묘역 5묘판 2205호에 묻혀있다.
군번 500243, 직박구리도 잠든 그 시간에 꽃 한 송이 너무나 충격적으로 피어났다. 별이 총총하게 빛나던 밤이었다. 우리의 마음속에 꽃이 된 사람, 그 때문에 우리의 5월은 더욱 맑고 그가 있어 우리의 봄은 더욱 화창하다. 그가 있어 오늘도 신록 푸른 꽃길을 걷는다. 그와 함께 하지 못해도 그가 있어 이 강산과 바다와 하늘은 더욱 푸르게 빛난다. 동작동 국립묘지, 그 차가운 빗돌 앞에서 머리 숙여 그를 생각한다. 그리고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불굴의 용기를 가진 그, 그는 지금 분명히 우리의 산하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를 생각하는 5월에 내 마음도 붉게 물들고 그가 없음에 날이 갈수록 우리의 마음은 텅 빈다. 그는 가고 없어도 그는 우리의 가슴 속에 환한 꽃으로 피어난 성자다. 그를 추모하며 기리는 행사가 매년 5월13일 울산에서 열린다.
청청한 양심의 화신인 당신, 당신이 가고 없음에 우리의 이 외롭고 허전하고 쓸쓸한 가슴을 달래주소서. 그리고 당신이 목숨 바쳐 지키고자 했던 이 미약한 조국을 지켜주소서. 꽃에 물들고 그에 물드는 5월, 부처님 오신 달에 떠난 성도화 당신, 영원불멸하소서.
[불교신문3201호/2016년5월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