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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더불어 꽃과 열매와
식물들과 온갖 새들이
하루종일 지저귀다 가니
몸 피곤한 것이나 관절 통증은
잊고 산다
온갖 이름 모를 새와 꽃들
이만한 도반이 어디 있겠는가
숲속 생활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텃밭에 심어놓은 것은 고구마, 고추, 방울토마토, 토마토, 오이, 상치, 쑥갓, 가지, 감자, 더덕, 도라지, 콩, 곰취, 수박, 열무, 파 등 여러 가지다. 처음에는 연습 삼아 농사도 배울 겸 몇 가지만 조금 심어볼 생각이었으나 밭을 갈고 심는 과정에서 아내의 욕심이 더해지고 이런저런 요구를 대충 다 들어주다보니 100평이 훨씬 넘었다.
전문 농사꾼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벌여놓다 보니 감당 못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주는 일이며 잡초 뽑는 일이며 바람에 견디도록 대를 박고 줄을 치는 일이며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일들을 일일이 하다 보니 손가락이며 손이며 무릎에 무리가 갔는지 주먹을 쥘 수도 없고 관절도 쑤시고 해서 아내도 나도 관절염 걱정에 병원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자라나는 식물들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생명을 키운다는 생각에 조석으로 밭에 나가 살고 있다. 비가 오지 않아 저녁마다 물을 주었다. 가뭄이 심하기도 하고 물을 좀 듬뿍 주기 위해 스프링클러까지 설치했다.
어느 날 아침 나가보니 오이며 고추에 꽃이 피고 가지에도 꽃이 피었다. 감자 꽃이 만발했다. 비록 몇 포기 되지는 않았지만 텃밭을 내려가 보면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오이가 달리고 방울토마토가 달린 것이 보였다. 얼마 있지 않아 열매들이 모양을 갖추기 시작하는데 보니까 오이는 마치 애벌레 같았다. 열매 끝에 노란 꽃잎이 달려 있었다. 애벌레들이 살금살금 기어 나오는 것을 보니 오이는 벌레의 집이었다. 얼마나 귀여웠던지 머리에 노란 꽃핀을 달고 어린이집 정원에 산책 나온 아이들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 어느 날 새벽 아래에 있는 밭을 돌아보는데 콩밭에 무성하던 콩잎이 사라졌다. 줄기는 남아 있는데 잎들이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안 일인데 고라니들이 내려와 싹둑 모두 잘라 먹어버린 것이다.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지만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심어 놓고 아끼며 돌보는 것을 누군가가 즐겨 먹는 식사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 정도의 보시는 기꺼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속으로 위로하며 생각에 잠기는데 아내는 이미 고라니 퇴치 방법을 연구해 놓고 있었다.
네티즌 등의 이야기를 듣고 크레졸을 준비해 용기에 담아 밭 여기저기에 두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남아있는 몇 잎마저도 고라니들이 먹어치워 버렸다. 아내와의 머리싸움에서 고라니들이 이긴 것이다. 결국은 안 되겠다 싶어 할 수 없이 울타리를 치기로 했다. 쇠말뚝을 박고 그물망을 둘러쳤다. 쳐놓고 보니 한편으로 고라니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저들이 막무가내 밭을 휘젓고 다닐 것을 생각 하니 속이 후련해졌다. 내가 아끼며 가꾸는 식물들은 울타리의 보호를 받을 것이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 했지만 올해는 묘목이라서 아직 그런 풍경은 꿈만 꾸고 보낼 것이다. 제2의 삶을 흙과 더불어 꽃과 열매와 식물들과 더불어 거기에 더하여 온갖 새들이 하루 종일 날아와 지저귀다 가니 몸 피곤한 것이나 손가락 관절 통증쯤은 잊고 산다. 산꿩이며 꾀꼬리, 오색딱따구리, 멧비둘기며 시시때때로 찾아와 속삭이다 가는 온갖 이름 모를 새들, 그리고 꽃들, 이만한 도반이 어디 있겠는가. 늦게 발견한 삶의 진수, 속으로 스스로 대견해 하기도 하면서 감사한다. 내 또한 돌아갈 곳이 이곳이 아니겠는가. 숲속의 생활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불교신문3217호/2016년7월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