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 詩

뼈를 읽다

분천 2020. 1. 7. 15:06

뼈를 읽다




농암고택 긍구당 정자 기둥에서

나무의 뼈를 보았다

검게 그을린 듯 굴곡진 온몸의 뼈

살은 풍화되어 사라지고 근육도 녹아내린

뼈는 나이테를 따라 드러나 있었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서까래에서도 뼈는 골이 깊었다

조상의 얼을 길이길이 이어받으라 이르시는

편액은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집의 품격을 유지하느라 골기와 사이사이 풀이 자랐다

마루 틈으로 글 읽는 소리인 듯

바람 소리 청아하게 새록새록 올라오고

뼈는 어느 것 하나 단단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아침 이슬과 청풍명월로 공궤를 올리는

만질수록 따뜻하고

들여다볼수록 온기가 느껴지는

귀거래, 귀거래 하던 행간은 일정하게 고르고 윤이 났다

돋을새김 무늬가 집을 지탱하고 있는 적선지가積善之家,

읽을수록 굳은 심지가 돋보였다



주변인과 문학 201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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