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아득한
문득 생각난 듯
산딸기 눈부시게 붉어
덤불을 헤치고 들어가다 거미집을 밟았다
집은 부서지고
집을 지키던 거미 한 마리
혼비백산 덤불 속으로 사라졌다
부서져 내린 서까래
덤불에 걸려 펄럭이고 이슬이 맺혀있었다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언덕 여기저기
붉은 등불 휘황하게 걸어두고
눈 감고 바람과 마주 앉아
법거량 문답 중이었을지도 모를
어둠 속으로 사라진 주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삶이 수행이라지만 몇 알의 딸기에 눈이 먼
빈 수레 같은 나의 삶, 나의 인생
초록 세상 밝히고 있는 등불은 더욱 붉게 불타
알알이 내 손바닥을 데웠다
기다려도 날벼락 맞은 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들여다본들 보수해 줄 수도 없는 선방 하나
칠통과 같았다
애지 2019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