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 詩

멀고도 아득한

분천 2019. 8. 15. 10:15

멀고도 아득한




문득 생각난 듯

산딸기 눈부시게 붉어

덤불을 헤치고 들어가다 거미집을 밟았다

집은 부서지고

집을 지키던 거미 한 마리

혼비백산 덤불 속으로 사라졌다

부서져 내린 서까래

덤불에 걸려 펄럭이고 이슬이 맺혀있었다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언덕 여기저기

붉은 등불 휘황하게 걸어두고

눈 감고 바람과 마주 앉아

법거량 문답 중이었을지도 모를

어둠 속으로 사라진 주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삶이 수행이라지만 몇 알의 딸기에 눈이 먼

빈 수레 같은 나의 삶, 나의 인생

초록 세상 밝히고 있는 등불은 더욱 붉게 불타

알알이 내 손바닥을 데웠다

기다려도 날벼락 맞은 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들여다본들 보수해 줄 수도 없는 선방 하나

칠통과 같았다




애지 2019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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