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여의도에도 바다가 있다

분천 2011. 7. 27. 08:39

 

여의도에도 바다가 있다

 

 

 

                                                                                       

                                                                                          이명 | 시인 

 

 

 

 

여의도동 33번지. 여의도에도 바다가 있다. 사시장철 파도가 그치지 않는 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다가 출렁거린다. 저 파도를 타고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파도가 산을 이루고 다시 무너져 계곡으로 곤두박질치는 스릴을 즐긴다. 그 높이가 높을수록 그 깊이가 깊을수록 더 큰 쾌감을 느낀다.

 

 

서투른 사람들은 사고 당하기 십상이다. 파도타기를 즐기기 전에 파도의 높이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파도의 높이와 세기와 바람의 방향과 내 몸의 상태와 구부림의 각도와 균형을 분석해야만 한다. 들려오는 풍문을 종합해서 내 몸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

 

 

여의도 바다 입구에는 파도를 내리누르려는 곰과 부풀어 오르게 하는 황소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시시각각 힘을 겨룬다. 곰은 앞발로 황소를 누르려 하고 황소는 뿔로 곰을 넘어뜨리려 한다. 그 각축장에서 황소가 이기면 파도가 높이 올라가고 곰이 이기면 파도의 깊이가 깊어진다.

 

 

고점과 깊은 수렁 사이를 오가며 아침 아홉시부터 오후 세시까지 으르렁거리며 힘을 겨룬다. 사람들은 환호한다. 황소가 이겼을 때 또 어떤 사람들은 내심으로 기대한다. 곰이 이기기를 그러나 여의도 사람들은 알 것이다. 여의도 거리에 곰은 보이지 않는다. 어느 골목에서도 만날 수 없다 황소만 거리 곳곳에 보인다.

 

 

여의도동 33번지 그 건물 안에 들어서야 곰과 황소가 싸우는 것을 볼 수 있다. 파도를 일으키는 그 우렁찬 울음소리와 괴성을 들을 수 있다. 주황빛 전광판의 숫자와 초록빛 숫자들이 그 소리의 향방 따라 휘황하게 빛나는 것들을 볼 수가 있다.

 

 

황소가 우위를 나타낼 때 전광판은 주황의 물결로 덮여가고 밝아진다. 따뜻하고 포근하다 곰의 위세가 강할 때 물결은 초록으로 덮여가고 주변은 어두워진다. 차갑다. 춥다. 사람들은 누구는 투기라 하고 누구는 투자라 한다. 누구는 놀음판이라 한다. 그 억세고 몰인정한 바다에서 내국인은 외세의 물결을 주시해야 한다.

 

 

어느 누구의 조작이나 조종을 허락하지 않는 그 완전경쟁의 시장에서 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그 바다에 나설 때는 호흡을 길게 그리고 깊이 들이 쉬어야 한다. 나는 무엇이며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은하수와 은하수 사이 총총한 별 중에 내 별은 어느 것이며 내가 왜 이 바다에 뛰어들고 있는 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바다는 모든 것을 삼킨다. 냉정하고 냉엄한 것만 있을 뿐 동정은 없다. 그 속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깔려있는 광케이블과 모뎀의 불빛들과 윙윙거리는 사각의 서버들만이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그 모든 것을 묵언으로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파도를 견뎌내고 있다.

 

 

오늘도 파도소리 들으며 어딘가에서 누구는 파티를 열고 누구는 쓸쓸히 돌아 설 것이다. 험한 파도만이 강한 어부를 만들 것임으로 당신은 또 다시 바다에 나설 것이다. 여의도 바다는 그래서 늘 살아있다. 그 바다를 마주하며 스릴과 낭만을 즐길 줄 아는 당신은 진정 여의도 사람이다.

 

 

 

 

[불교신문 2739호/ 7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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