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 공즉시색
열무 잎 속에 싸인 고추 덩어리를 씹었다
푸른 잎 속의 푸른 고추,
칼이 몇 번을 잘게 토막 내려 지나갔겠지만
무쇠도 아, 하고 칼집만 내 놓고 비껴간 덩어리
입 안이 얼얼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오그라든 열무 잎 속에서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내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들어내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고 웅크리고 있다가
기다렸다는 듯 불쑥, 톡 쏘는 맛
맵다
튼실튼실한 무 하나를 들였다
껍질을 벗겼다 하얀 허리가 미끈했다
뚝, 반으로 잘라보니
단단한 속에 단물이 흘러 내렸다
토막토막 내 고춧가루를 듬뿍 넣었다
손끝에 힘을 주고 고루고루 간이 배게 버무렸다
맛이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