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제사밥
나물과 멧국수 사이로 김이 솔솔 올라온다
붉은 색 하나 걸치지 않은 밥이 은연중 고택을 닮았다
맨 간장에 비빈 나물밥에서 무명옷 냄새가 난다
고사리는 비녀 틈새를 빠져나온 17대 순흥 이 씨 할매 머리카락 한 올처럼 꼬부라져 있다 삶은 무채는 고조부 도포 자락처럼 후줄그레 늘어져 있고 멧국수는 뭉쳐져 조모 흰 고무신코 같이 밥알을 안고 둥글게 뭉툭하다 고택 가득 서열도 없이 섞여 앉은 모습들이 퍼석하다
통성명하듯
색 바랜 나물 조각
신위神位 하나씩 앞세워 이리저리 구르며
제 자리를 찾아 몸을 낮춘다
도라지나물 한 줄기 탯줄처럼 늘어져 있다
핵가족 시대
고르지 못한 문중 대소사 걱정에 찰기를 잃었지만
용케도 대를 이어왔다는 안도감에 고택은 묵묵하다
기제사를 피해 섞여 앉은 몸들이 제각각,
뼈대가 물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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