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앵무새 학당

화중신선花中神仙

분천 2013. 9. 27. 18:26

화중신선花中神仙

 

 

 

무너미 비탈길에서 만난 명자나무

바람이 잔가지 사이로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있다

이곳에 뿌리내린 지 수십 년이 지났나 보다

터진 껍질 사이로 군데군데

하얗게 흘러내린 진액이 단단히 말라붙어 있다

그렁그렁한 꽃망울

누구는 산당화라 하기도 하고

누구는 해당화라 한다는데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그저 아가씨나무라 불리며 서 있었다는 저 꽃나무,

하얀 꽃잎을 겹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는지

화중신선이란 어려운 명찰을 허리춤에 내걸고 있다

나무에서 아득히 묵은 풀 향기가 난다

학명이며 꽃말이며 나이며 여기까지 오게 된 연유며

내력을 조심스레 들여다보는데

푸드득

머리숱을 헤치고 초록 새 한 마리 날아오른다

새로운 숲길 하나 일러 주려는 듯

긴 그림자를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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