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중신선花中神仙
무너미 비탈길에서 만난 명자나무
바람이 잔가지 사이로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있다
이곳에 뿌리내린 지 수십 년이 지났나 보다
터진 껍질 사이로 군데군데
하얗게 흘러내린 진액이 단단히 말라붙어 있다
그렁그렁한 꽃망울
누구는 산당화라 하기도 하고
누구는 해당화라 한다는데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그저 아가씨나무라 불리며 서 있었다는 저 꽃나무,
하얀 꽃잎을 겹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는지
화중신선이란 어려운 명찰을 허리춤에 내걸고 있다
나무에서 아득히 묵은 풀 향기가 난다
학명이며 꽃말이며 나이며 여기까지 오게 된 연유며
내력을 조심스레 들여다보는데
푸드득
머리숱을 헤치고 초록 새 한 마리 날아오른다
새로운 숲길 하나 일러 주려는 듯
긴 그림자를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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