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의 빈 의자
산중에서 꿈꾸듯
북명을 바라보고 있는 의자 하나
원래는 흔들의자*였지만 받침대가 부러져 꼿꼿하다
언젠가는 남루한 옷에
끈으로 신발을 발등에 묶은 장자가 앉아
물끄러미 나비를 바라보더니
어느 날은 노자가 앉아 서쪽 하늘에 눈길을 주다 갔고
또 다른 날에는
달마가 무심히 구름을 바라보다 사라졌다
내가 보기에 형체를 알 수 없을 때는 아무래도 도깨비다
천기를 누설할 수는 없지만 무지개 도둑이라든가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든가 블랙홀이라든가
누군가 계속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와인으로 목을 축일 수밖에 없는 의자는
가래가 끓고 다리는 불편해도
이 풍진세상, 끽연 말고는 별 도리가 없다
한때의 품격을 간직한 채 시인이라기보다는 철학자,
오늘은 마당가를 지키는 사상가다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흔들의자 : 방산 박제천 시인이 사용하던 의자
문학과 창작 2023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