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이 다 되어갑니다
도시에서의 일은 잊은 지 오래입니다 어제는 삵이 내려와 놀다 갔고 족제비도 다녀갔습니다 고라니는 나를 보고도 더 이상 울지 않습니다 매도 나무에 걸터앉아 나를 희롱합니다
밤새 소쩍새, 수리부엉이가 다녀간 무덤에 술을 따르고 나누어 마셨습니다 인사를 나누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군요
달이 뜨면 어둠 속으로 들어갑니다 숲속의 검은 수풀을 헤치며 사라지는 나를 당신은 언뜻 헛것을 보았다 할 수도 있겠지요
새벽마다 산이 내려와 바다에 주둥이를 박고 엎드려 입을 헹구면 바다는 출렁이고 붉게 물들어 갑니다 산도 포식자라는 사실을 귀띔해 드리면 내가 짐승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 마세요 여기서 얼마간 지내다 보면 사람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테니까요 솔바람 소리에 속이 다 후련할 겁니다 당신도 산중에 아슈람 하나 가져보세요
문학과 창작 2023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