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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래 시인의 시통공간(詩通空間).310 - 이 명

분천 2025. 4. 12. 08:39

 

 

 

 

이 명

 

 

 

주인은 나를 태우고 먼 길을 와
산기슭에 두고 갔다
몇 번을 짖으며 쫓아갔지만
끝까지 따라가지 않았다

 

나는 주인을 알고 있다
주인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다

 

더 크게
무위자연이 되라는
주인의 마음이 읽히기 때문이다

 

산은 높았고 나는 산을 지키기로 했다

 

 

-(시와소금 2025 봄호 Vol. 53)

 

 

◇ 시 해설

 

사람이 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역으로 생각해 보면 개도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주인은 개를 위해 보행기에 태워주고 가슴에 안아주고 등에 업고 가기도 하며 자식으로 대우를 해 준다. 반려견의 인식이 달라졌으며 가족의 구성원이라고 믿는 사람의 신념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 시는 역발상에서 느낌을 주는 것으로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개의 시선에서 ‘주인은 나를 태우고 먼 길을 와 산기슭에 두고 갔’으며 주인과 헤어지지 않으려고 ‘몇 번을 짖으며 쫓아갔지만’ 개는 대승적 차원에서 포기하기로 하여 ‘끝까지 따라가지 않았다’는 입장을 알려준다.

개는 동고동락한 주인의 입장을 너무 잘 알고 있고 ‘주인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기에 주인의 불가피한 행위를 이해하고 동조하게 된 것이다. 세상살이가 어렵고 부모 부양을 힘들어하는 자식의 현실적 한계에 대한 심정도 알고 있으므로 그동안 주인이 베풀어준 사랑의 힘과 은혜를 잊을 수가 없어서 현실 타협을 더 승화시켰다.

주인이 개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개는 ‘더 크게 무위자연이 되라는 주인의 마음이 읽’혀 진다. 세속에서 벗어나 자연을 즐기며 살라는 당부를 알았기에 깨달음을 위한 출가자로 마음을 다지는 것이다. 현실에 순응했다. 다른 들개처럼 야생화되지 않고 깨달은 경지의 개가 되어 산이 높아도 개는 그 ‘산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개만도 못한 생각으로 접근하지 말지어다.

 

 

뉴스 경남 2025년 4월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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