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분천동 본가입납

초록 함정

분천 2012. 7. 23. 22:42

초록 함정

 

 

  벗어나는 길은 빠져드는 길 뿐이다

 

  선암사 선방 출입문 앞, 수사마귀가 나타나자 암사마귀가 기어코 길을 가로 막는다 눈빛이 심상치 않다 수사마귀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던 암사마귀, 배를 슬슬 흔든다 암내를 풍기고 있다 선방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수사마귀의 행동이 궁금하다 돌아보니 암사마귀의 등으로 기어오른다 간혹 거친 숨소리만 뱉어낼 뿐 한동안 선을 수행한다 일체의 흔들림이 없다 후대를 위한 자비가 깊이 모를 적막으로 흘러들 순간, 암놈이 앞발을 치켜든다 수사마귀의 머리채를 잡아챈다 와지직, 머리부터 씹어 돌리는 턱 사이로 바람이 서걱서걱 잘려나간다 초록 변신이 들키자 입가에 묘한 웃음을 흘리며 힐끗, 나를 쳐다본다 더듬이 하나 삐쭉이 턱 끝에 걸려있다 허공이 된 수사마귀의 보시, 조주의 함정에 몰두하던 나는 더욱 깊은 함정 속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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