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산 호랑거미 달마산 호랑거미 대웅보전 벽면 꼭대기 천불벽화 앞이다 다리가 가늘고 긴 호랑거미 한 마리 툭툭 다리를 털더니 여기다 싶었는지 공포에다 집을 짓고 있다 유난히 불룩한 등짐이 예사롭지 않다 빈손으로 대청에 올라앉아 무심히 바라보는 나 같은 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유장한 .. 시집 분천동 본가입납 2012.07.23
노자 도덕경을 읽다가 노자 도덕경을 읽다가 비 내리는 절집 요사채 뒷산, 참나무 우듬지에서 거위벌레 암놈이 바쁘게 움직인다 몸길이 0.8cm 원뿔 모양 앞가슴에 모가지가 가늘고 긴 벌레, 거위벌레과 족속이다 계보까지 갖춘 뼈대 있는 벌레다 도토리 속을 한참동안 긴 주둥이로 후벼 파다가 갑자기 구멍 속에.. 시집 분천동 본가입납 2012.07.23
(Ⅲ 마음대로 호로병) 마음대로 호로병 마음대로 호로병 노숙공원에 주저앉아 소주 한 잔 마시다보니 소주 병 속에 뭔가 얼비친다 언젠가 보았던 건륭제 호리병이다 팔보 무늬로 장식한 불룩한 아랫배 가운데 용이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잠든 사이 하늘로 올라가 버린 용 같다 그 용의 행방이 궁금하던 나는 팔보 무늬며 박제된 .. 시집 분천동 본가입납 2012.07.23
여의도 만물상, 꿈을 골라보세요 여의도 만물상, 꿈을 골라보세요 여의도동 33번지 벽면에 붉은색 초록색의 전광판 숫자가 번뜩이고 코너마다 플래카드가 가득 걸려 있었다 고향의 물건들이 그립다고요 여의도 시장으로 오세요 - 초록뱀 1,805원 서원 3,590원 국보 14,300원 서산 30,300원 현재도 앞날도 캄캄하다고요 - 드림 400.. 시집 분천동 본가입납 2012.07.23
서핑하러 여의도로 간다 서핑하러 여의도로 간다 나는 아침마다 서핑하러 여의도로 간다 여의도역과 여의나루역 사이에 있는 바다 그 바다에는 바람이 멈추지 않는 시장이 있다 하와이 오아후 와이메아 베이처럼 바다는 쉴 새 없이 부풀어 오르고 파도는 물결을 감아 구르며 해안으로 달린다 나는 솟아오르는 .. 시집 분천동 본가입납 2012.07.23
비휘발성 메모리, 휘발되다 비휘발성 메모리, 휘발되다 노트북 컴퓨터가 발열한다 백신 프로그램을 돌려 보니 바이러스가 침입하였다 전문의에게 들이미니 꽃들이 쏟아져 나온다 꽃병 바이러스다 안을 들여다보니 꽃들이 만발하다 들국화 코스모스 나팔꽃에 흑장미 백장미, 양귀비도 보인다 여기까지 파고든 거리.. 시집 분천동 본가입납 2012.07.23
미황사 가는 길 미황사 가는 길 땅끝 마을 방파제 주차장이다 차문을 열자 왕파리 한 마리가 잽싸게 날아든다 차 안을 서너 바퀴 휘 돌더니 내비게이션에 앉는다 창문을 열고 손을 저어 내쫒지만 나가지 않는다 다시 내비게이션에 앉는다 가만히 보니 등에 푸른빛이 돈다 어디서 한방 터지고 이곳으.. 시집 분천동 본가입납 2012.07.23
내 몸의 점화키를 찾는다 내 몸의 점화키를 찾는다 4.8cm 작은 열쇠 꽂아 슬쩍 오른쪽으로 돌리면 심장이 뛰고 V6 DOHC 1700kg 육중한 몸체가 움직인다 밟으면 밟을수록 달린다 120km/h는 태풍의 속도다 풀이 눕고 나무들이 고개 숙인다 바람의 속도를 넘어서면 자동차 바퀴는 작은 톱니바퀴가 되고 지구는 큰 톱니바퀴가.. 시집 분천동 본가입납 2012.07.23
대학로 참아귀 대학로 참아귀 대학로에 한 사나이가 서성이고 있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 틈새로 비치는 칙칙한 얼굴 늘어져 처진 배 가죽이 달포는 굶은 것 같다 어쩌다 염마왕의 세계에 잘못 들어 음식을 먹지도 못하고 입만 데었는지 아래턱이 늘어지고 입술이 유난히 거무스레하다 아프리카산 .. 시집 분천동 본가입납 2012.07.23
산타 주지 스님 산타 주지 스님 내가 다니는 절집 주지스님은 12월만 되면 바쁘다 신도들은 아랑곳없이 장삼 위에 두건이 달린 붉은 옷을 입고 대웅전 앞에 보란 듯이 나무 한 그루 세운다 별들이 뜨고 연꽃송이 주렁주렁 가지마다 걸린다 아기 예수 연꽃 안에서 숨 쉬고 있다 불그스름한 연꽃은 성모 마.. 시집 분천동 본가입납 2012.07.23